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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를 위한 회의 2강 - 화백회의(포기와 존중을 통한 어울림)
1. 생각의 포기를 통해 어울림을 목표로 하는 회의
화백회의를 여러번 지도해 봤는데, 가장 잘 된 화백회의는 회의 참여자들이 자기 생각을 포기하면서 다른 생각을 지지하는 일이 많이 일어날 때 가능했습니다.
이번 다지원에서 진행한 화백회의도 그런 점에서 좋은 회의였습니다.
‘다지원의 청소년 과정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주제로 진행한 회의에서 회의가 진행되면 될 수록 꾸준히 생각을 포기하는 일이 일어나면서 마지막에는 하나의 생각으로 모아졌습니다.
화백회의의 만장일치에 대해서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할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제로 하나의 의견으로 만장일치가 이루어지는 걸 본 겁니다.
화백회의는 ‘화(和)-어울림’이라는 가치를 회의를 통해서 실현하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회의를 하게 되면 내가 가진 생각을 관철하도록 하는 데 주력합니다.
토론과 논리는 회의를 통해 결정을 이끌어 내는 중요한 기술입니다.
논리적 근거가 정교하고 합리적일수록 회의에서 내가 가진 생각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토론에 기반을 둔 회의는 이기고 지는 게임과 같은 것이고, 경쟁의 논리가 적용됩니다.
화백회의에 참여하는 사람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시작합니다.
‘이번 회의를 통해 나는 어디까지 내 생각을 포기할 수 있을까?’
‘나는 회의를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얼마만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토론을 통한 다수결 회의와 생각의 포기를 통해 어울림을 목표로하는 화백회의는 회의를 시작하는 마음에서 차이가 납니다.
2. 화백회의의 기술
1) 화백회의의 역할
가. 사회자
사회자는 회의 전체를 진행합니다. 사회자는 어느 의견에 대해서도 자기 입장을 밝힐 수 없습니다. 사회자는 시간 관리를 통해 어느 한쪽의 의견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사용되지 않게 합니다. 모든 의견에 대해서 공평해야 하고, 시간도 적절하게 배분하되, 가능한 생각의 드러남을 지원합니다.
회의를 진행하다 도저히 한쪽의 의견에 대한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경우 언제든 스스로 사회자의 역할을 중단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사회자가 편파적일 때 회의 구성원들이 사회자의 교체를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사회자의 교체 요구가 있을 경우 사회자는 바로 물러나고 새로운 사회자를 모셔야 합니다.
나. 판정관
축구의 경우 심판이 주심과 함께 두명의 부심이 있습니다. 운동 경기에서는 이런 여러명의 심판 개념이 많이 있습니다.
판정관은 회의의 부사회자 정도의 역할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판정관은 사회자를 보조해서 회의를 같이 진행합니다.
판정관의 중요 임무는 의견이 대립될 경우 일정 정도 시점에서 대립되는 의견의 가치를 결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의견은 현실을 잘 반영해서 회의 참가자들의 지지를 많이 받는 의견이고, B라는 의견은 현실적 이익은 많이 없지만, 중요한 미래 가치를 가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 판정관은 회의를 잘 관찰하고 깊이 생각한 다음, A B 두 의견에 대해 가치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만약 A 의견이 14표, B 의견이 10표를 얻었는데, 판정관이 A 의견에 대해 ‘2의 가치’ B 의견에 대해 ‘3의 가치’를 결정하게 되면, 최종 결과 (표*가치)에 따라 A는 28, B는 30이 됩니다.
판정관은 회의 전체의 결정을 완전히 뒤엎을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판정관을 인정하는 문제는 쉽지 않습니다.
판정관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높은 인품과 안목을 갖춘 사람이 맡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있는 공동체는 그 자체가 공동체의 큰 축복입니다.
현실의 회의에서 적용하기는 아주 어려운 개념 중 하나입니다.
다. 하늘님 (회의 참가자)
화백회의에서는 회의 참가자를 부를 때 ‘하늘님’이라고 부릅니다.
하늘님은 회의의 진행 과정에서 모든 권리를 가집니다.
동아시아의 오랜 인간 개념에는 ‘사람이 하늘입니다.’ 라는 게 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은 동학의 개념이 아닙니다.
동학 이전부터 누구나 알고 있던 인간 개념입니다.
동학의 핵심 사상은 ‘인내천’이 아니라 ‘시천주(侍天主)’입니다.
동아시아에서 사람이 하늘처럼 소중한 존재라는 건 상식이었고, 동학은 그렇게 존엄한 인간의 삶이 무시되고 차별받는 것을 극복하기 위한 운동이었습니다.
그 운동을 ‘모심(侍)’이라고 했습니다.
2) 화백회의의 결정 방법 - 토론없이 결정을 먼저하고 조정한다.
가. 말발 (결정권)
우리는 회의를 할 때 충분히 토론한 다음 최종적으로 여러 가지 표결 방법을 사용해서 결정을 합니다. 결정이 되고나면 소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다수 의견에 따르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사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인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회의의 결과를 보고 소수자들이 다수 의견에 대해 떠나갈 시기를 확정짓는 경우도 많습니다. 회의 전까지는 참았다가 회의가 끝나면 미련없이 헤어지는 겁니다.
다수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거죠.
화백회의는 회의가 시작되어 의견이 나오고 나면 토론없이 바로 결정부터 합니다.
이 결정에 사용하는 표가 ‘말발’입니다.
대개 참가자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됩니다.
보통 10장 정도로 공동체의 상징이나 직인이 찍힌 표를 받습니다.
이런 방법을 써도 좋습니다.
회의 참가비를 만원으로 해서 10장의 천원권 지폐를 사용해도 좋습니다.
이 돈은 회의를 마치고 나서 같이 식사를 하는 용도로 써도 되고,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하는 기금으로 사용해도 됩니다.
보통은 동일한 10장을 받는데, 공동체 구성원들이 동의할 경우 특별한 공로가 있는 분들에게는 2-3배 범위 내에서 표의 차등을 둘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동체의 회장이나 총무 같은 분들에게 ‘말발’을 더 드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받은 ‘말발표’에는 자기의 이름을 기록합니다.
일반적인 다수결 의결은 무기명, 비밀 투표를 원칙으로 하지만, 화백회의는 기명, 공개 표결이 원칙입니다.
이제 회의가 시작되면 A 의견에 대해 바로 표결을 합니다.
A 의견을 제안한 사람은 자신에게 ‘말발 좀 세워주세요’ 라고 하늘님에게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하늘님들은 자신이 가진 말발에서 자유롭게 A 의견에 모아줍니다.
B 의견을 가진 분이 A 의견에 대해 반대되거나, 새로운 제안을 하면 또 똑같이 하늘님들은 말발을 세워줍니다.
하늘님들은 회의가 진행되는 내내 언제든 자기 말발에 이름을 써 뒀기 때문에 자유롭게 A,B,C 다양한 의견을 옮겨다닐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생각에서 다른 생각으로 자유롭게 옮겨 다니면서 생각의 변화를 경험하는 겁니다.
A,B.C 각각의 의견을 제안한 분들은 말발이 옮겨다니는 걸 보면서 자기 생각이 하늘님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 지 보게 됩니다.
의견을 제안한 사람은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하늘님들의 생각과 동떨어진 것을 알게되면 자기 생각을 포기할 수 있고, 다른 제안자와 의견을 통합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제안을 포기할 경우, 자신에게 모여진 말발을 하늘님들께 다시 찾아가 달라고 부탁드릴 수 있습니다.
A와 B 의견이 서로 통합할 경우에도 동의하지 않는 하늘님들이 찾아갈 기회를 드리고, A,B 두 의견을 통합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포기와 통합이 이루어져 하나의 생각으로 모아지면 그 지점이 모두가 동의하는 ‘만장 일치’의 의견입니다.
만약에 그런 하나의 의견으로 남지 않고, 끝까지 두 의견이 대립할 경우, 어느 시점에서 판정관이 개입해서 의견의 가치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의견의 가치가 결정되었을 경우, 그 이후부터는 가치의 배율에 따라 표가 결정됩니다.
가치 결정 이후에도 말발의 이동은 계속될 수 있습니다.
의견의 가치 결정은 아주 신중해야 하고, 의견의 대립이 백중세일 때는 결정된 이후의 문제도 많아서 1:1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하다보면, 어느 시점에서 전혀 표의 움직임이 없는 지점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A 의견이 65표, B 의견이 62표 일 때 A와B 의 차이는 ‘3표’입니다.
지금 회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3표 차이로 A라는 의견이 결정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화백회의에서는 표를 사는 것도 받아들입니다.
1표에 천원 정도의 가격을 정해서 3-5표 정도를 꼭 필요할 경우 돈을 내고 살 수 있습니다.
말발을 사는 것이 가능하면, 이렇게 의견이 비슷하게 대립될 경우 말발표를 사서 표를 더할 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다 거쳤는데도 표의 움직임이 전혀없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지점이 결정하는 지점입니다.
만약 3표 차이로 A 의견이 결정된다면, A 의견은 극히 낮은 지지를 받으며 결정된 것이고, A 의견은 그 정도의 힘을 가지는 약한 의견이라는 걸 A 의견 지지자들도 알게 되는 겁니다.
위의 경우 120표가 넘는 거의 일치된 의견의 안이 나왔을 경우와 두 의견의 표를 상쇄해서 3표 정도의 지지를 받는 의견을 실행할 경우는 거기서 나오는 힘이 완전히 다르게 됩니다.
나, 청문권 - 질문하고 듣는 권리
화백회의는 회의의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논리와 토론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요소를 ‘경청-깊이 듣는 것’이라고 봅니다.
경청하는 회의를 위해 ‘발언’을 제한합니다.
그리고, 가능한 발언도 내 생각을 말하는 것보다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의견에 대해서 ‘질문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청문권은 질문하거나, 발언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화백회의에서는 발언도 발언이라고 부르지 않고 자기가 자기에게 묻고 답한다는 뜻으로 ‘자기 청문’이라고 부릅니다.
말하는 것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잘 들으면서 하는 겁니다.
화백회의에서는 보통 청문권 3장을 지급합니다.
자기 청문이나 질문을 할 때마다 청문권 한 장씩을 보조 사회자인 판정관에게 내야하고 세 장을 가 쓰게 되면 더 이상 자기 청문과 질문의 권리가 없어집니다.
이렇게 글로 써서 어렵지 실제 해보면 조금도 어렵지 않습니다.
보통 두번만 해보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실제 해보면 이게 얼마나 효율적이고, 높은 가치관에 바탕을 둔 회의 기법인지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백회의의 진정한 의미는 이런 회의 기술이 아닙니다.
다음 3강에서는 화백회의의 정신적 가치에 대해 이야기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