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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그 한계 3, 4강에서는 유통영역에서의 자본의 한계를 1,2로 나누어 살펴보았습니다.=)
아래느 강의 요약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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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펴보았던 자본의 한계는 생산 과정 내부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짧게 요약하자면, 필요노동시간이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이윤율이 하락하게 되는 것이었는데, 이에 따라 생산력의 증강이 천문학적인 숫자로 커지지 않는 한은, 무한히 증식하려고 하는 자본의 본성을 충족시킬 수 없다. 그 본성을 충족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잉여가치가 증가하면 할수록 증식에 반(反)해 이윤율이 감소하게 된다.
이제부터 살펴볼 것은 유통과정에서 나타나는 자본의 한계이다. 생산과정을 거치면서, 가치가 생산되지만 이 가치가 실현되는 것은 유통단계에서 상품이 판매되었을 때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교환가치와 사용가치의 문제이다. 교환가치와 사용가치는 생산된 상품 안에 밀착해있는데, 이 둘은 사실상 서로 모순 관계이다. 교환가치라는 것은, 추상화된 화폐로서 무한히 증식하려는 자본의 속성을 내포하는 반면 사용가치는 해당 상품의 물질성 안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구분하여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것은 이후 맑스가 주류경제학자들을 비판하는 주요한 쟁점이 된다.
여기서 맑스가 언급하는 것은 상품 안에서의 교환가치이다. 생산과정을 거쳐 생산된 가치는, 맑스의 말에 따르면, "상실한 부의 일반적 형식을 새로 정립하기 위하여 유통과정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서 새로이 정립되는 이 '부의 일반적 형식'은 교환 가치다. 생산과정 이전에는 노동력 상품 등을 구매하는 구매자로서 존재했던 자본가들이, 이제 생산물로서 구체화된(그러므로 부의 일반적 형식을 상실한) 상품을 갖고, 무한히 증식하려는 부의 일반적 형식-교환가치-으로서의 자본의 본성을 따라 유통 과정 속으로 들어간다.
유통과정에서 이 교환가치는, 가치화되거나 혹은 동시에 탈가치화된다. 이것은 "자본주의는 짝수다"라는 명제와 결부되는데, 이는 즉, 반드시 '교환'되어야 가치가 실현된다는 것이다. 만약 '홀수'일 경우, 즉 교환되지 않는 경우에는 생산된 가치가 탈가치화된다. 유통과정에서의 장벽은 바로 여기, "홀수"의 문제에서 드러난다.
홀수의 문제는 교환가치와 사용가치 양면에서 드러나는데, 첫번째로 사용가치에 있어서 "홀수"의 문제는 욕구와 관련되어 등장한다. 이를테면, 쌀이 아무리 많이 생산되어도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양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욕구 이상의 생산은 소비되기 어려운 것이다. 즉 자본은 무한정 증식하려는 본성을 가진데에 반해, 소비의 크기는 한정되어 있어 장벽이 되는 것이다.
두번째로 교환가치에 있어서 등장하는 홀수는, 생산과정에서 새로이 첨가된 이윤, 즉 △C에 관한 것이다. 자본주의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교환은 반드시 등가교환이라는 속성을 갖는다. 하지만 생산과정에서 본래의 C가 아니라 이윤이 부가된 △C의 경우, 이윤분에 해당하는 적절한 교환의 짝을 찾을 수 없다. 이 짝은 오로지 화폐(교환가치로서의 화폐=화폐로서의 화폐)로만 채울 수 있다. 여기에서 이 화폐의 속성을 분명하게 해야하는데, 이 화폐로서의 화폐는 앞서 구분한 사용가치-교환가치에서 교환가치에 해당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임금으로 받아 다른 물건들을 사기 위해 직접적으로 손에 쥐고 있는 화폐는 사용 가치로서의 화폐에 해당한다. 여기에서는 △C의 등가물로서 화폐가 존재하므로, 이것은 교환가치로서의 화폐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부각되는 것은 교환가치로서의 화폐다. 생산물은 교환하기 위해서, 화폐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것이 모순이다. 사용가치로서의 생산물이, "짝수"를 맞추기 위하여, 교환가치로서의 화폐를 호출하는 것이다. 생산 과정 이전에는, 산노동과 교환되기 위하여 화폐가 필요했는데, 이제는 잉여가치로서 존재하기 위하여 화폐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유통영역은 이전처럼의 단순 유통영역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적인 확대'를 이루어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등가물이 교환될 수 없으므로, 더 많은 교환지점이 창출되어야 하는 것이다. 교환지점을 창출해내기 위해, 자본은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을 번식시켜야만 한다. 세계시장, 전 지구의 자본주의화는 이러한 토대 아래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유통영역의 장벽을 넘기 위하여, 자본은 기존의 소비의 영역을 확대하거나 새로운 욕구를 창출해낸다. 자본의 이러한 욕구 생산은 한편으로 문명화라는 이점을 낳는다. 보다 다양한 욕구들이 생산되고, 이 안에서 인간이 더욱 더 창조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맑스는 자본에 관하여 이중적인 관점을 취한다. 맑스는 자본이 생산하는 이점을 분명하게 바라보고, 이렇게 자본이 생산하는 새로운 지점들을 점하여 그것들을 파고 듦으로서 저항의 영역을 찾는다.)
그러나 유통영역의 장벽에 대하여, 기존 주류경제학자들은 주로 교환가치와 사용가치를 혼동함으로서 오류를 일으킨다. 분명한 것은, 생산과정에서는 가치가 '생산'되고, 이 생산된 가치가 유통과정에서 '실현'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리카도는 생산과정 자체를 자기가치화와 동일시하여, 생산과정에서의 가치화와 유통과정에서의 가치화에 대해 혼동했다. 그와 더불어, 유통영역에서의 장벽은 자본의 본성과는 관련이 없이 우연히 등장한느 것으로만 이해했다. 그것은 부의 일반적 속성이라는, 자본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또한 유통과정에서 등장하는 일반적 형식으로서의 교환가치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특히, "과잉축적"와 "과소소비"의 논란과도 맥을 잇는다. 과잉축적과 과소소비는 일면 비슷해보이지만, 사실상 매우 다른 문제로 파악해야 한다. 과잉축적은 생산된 가치가 교환보다 과잉인 것으로, 교환되는 것 이상으로 가치가 생산된다는 것이다. 즉 이는 교환가치의 문제로 파악해야 한다. 반면 과소소비는 유통과정의 첫번째 장벽과 비슷한 맥락으로, 사용가치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과소소비는 과잉축적의 일부로서 포괄될 수는 있으나, 같은 문제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주류경제학자들은 주로 이것을 혼동했다. 맑스는 이러한 혼동을 비판했고, 그 비판의 요지는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다. 따라서 맑스를 읽는 데에 있어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정밀하게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유통영역의 장벽 역시 이러한 개념들의 정밀한 사용과 더불어 있음을 알 수 있다.